세계의 종말
지구 멸망은 SF 영화에서 자주 다루는 친숙한 소재이다. 외계인의 습격, 인류의 좀비화, 전염병의 대유행, 핵 전쟁, 혜성 충돌, 기상 이변 등으로 지구가 생물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하고 인물들이 상황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극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규모의 미학을 펼칠 수 있고 낯선 풍경을 배경으로 공포와 스릴을 만들 수 있는 지구 멸망 이야기는 특히 할리우드에서 줄기차게 다루는 장르이다. 이 영화들에서 지구를 위협하는 원인이 무엇이냐를 통해 시대상이 드러난다. 전쟁의 참혹한 기억과 적군에 대한 은유로 외계의 침공을 다루거나,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에는 핵 전쟁에 대한 공포가 드러나는 지구 멸망 시나리오가 인기를 끌었다. 경제, 사회의 불안이 심화할 때는 질병이나 좀비가 창궐했다. 그리고 이러한 SF 드라마가 성립하는 근원에는 생존과 환경의 밀접한 연관에 기반한 우리 행성 지구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다.
[세계의 종말] 섹션에서는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SF 중에서도 특히 ‘기후 픽션(Cli-Fi)’이라는 새롭게 대두되는 서브 장르로 분류할 만한 대표작들을 모았다. 지구가 공전 궤도를 이탈해 태양에 가까워지며 점점 불타오르고 마는 <지구가 불타는 날>, 온 세상이 사막으로 변한 후의 광기를 보여주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기상 이변으로 지구가 얼어붙은 세계를 가정하는 <설국열차> 모두 기후변화의 징조를 SF 스펙터클로 표현했다. <월-E>는 지구를 쓰레기 행성으로 만들고 떠나버린 인류를 로봇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소일렌트 그린>은 오염과 생태계 붕괴로 인해 식량난에 허덕이는 비참한 세상을 경찰 수사물의 형태로 그렸다.